사뮈엘 베케트 선집.
사뮈엘 베케트의 장편소설.
베케트의 소설 3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중 마지막 소설이다.
세 소설은 그 내용이 직접적으로 이어지지는 않되 동일한 이름들이 언급되고 주체를 규정짓는 이름이 점차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 등에서 3부작으로 통하며,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는 이러한 흐름의 핵심을 담고 있다.
제목대로,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3부작의 첫 소설 <몰로이>에서는
1부의 인물 몰로이와 2부의 인물 모랑은 자아분열로 인해 구별할 수 없는 존재들로 추정되고,
두 번째 소설 <말론 죽다>에서 말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은 죽어가고 있다가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서,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팔다리도 없다.
몸통과 머리만 남은 채 단지에 들어가 어느 식당의 메뉴판 노릇을 하고 있는 이 '항아리-인간'은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를 넘어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이렇게 3부작은 주체를 규정짓는 이름이 점차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는 그 끝에서 '주체의 거의 완전한 추락'을 보여준다.
지금은 어딜까? 지금은 언제일까? 지금은 누구일까? 나한테 묻지 말고. 나는이라고 말하기. 생각하지 말고. 그것들을(ca) 질문이라고, 가설이라고 부르기. 앞으로 가, 여기서 저것은 앞으
로라고 하고, 이것은 가라고 하기. --- p.9
내 귀가 완전히 먼 건 아닌 게 나한테 전달되는 소리들이 분명히 있거든. 여기가 거의 완벽하게 조용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그게 또 완전히 조용한 건 아니라서. 나는 이곳에서 들은 첫 번
째 소리를 기억하고 있어, 처음 들은 날 이후에도 같은 소리를 자주 듣고는 했지만. 사실 나는 내가 여기 체류하게 된 데에도 어떤 시작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해봐야만 할 거야, 그게 비록
이야기를 편하게 하려는 수작밖에 안 될지라도. 지옥 그 자체는, 영원한 것이기는 하지만, 루시퍼의 반란에서 시작되는 거잖아. 따라서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유사성에 기대어,
영원부터는 아니었을지라도, 영원토록 내가 여기에 있으리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는 거지. 그럼 자 이런 생각이 내 설명에 얼마나 특별한 공헌을 하는지 바로 보자고. 특히 기
억이, 내가 사용하는 걸 금해야만 한다고 내가 생각하고는 했던 그 기억이, 필요한 경우에는, 즉시 발언권을 가지게 될 거야. 여기에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들이 적어도 1천 개 정도는
있어. 이 단어들이 나한테 필요할 때가 아마 있을 거야. 그러니까 완전무결한 침묵의 한 시대가 지나가면, 어떤 비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지. --- p.15
섬, 나는 섬 안에 있어, 나는 절대로 그 섬을 떠난 적이 없었어, 그걸 보면 나도 참 한심해. 나는 나선 모양으로, 세계 일주를 하며 살았다고 그렇게 이해하고 믿고 있었지. 착각한 거야, 내
가 쉬지 않고 돌고 있는 곳은 바로 그 섬이니까. 나는 오로지 그 섬 말고는, 다른 곳은 전혀 몰라. 사실 둘러볼 기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 섬에 대해서도 역시나 아는 게 없어. 나는 섬
기슭에 다다르면, 거기서 방향을 틀지, 섬 안쪽으로. 내 경로는, 나선 모양이 아니야, 그것 역시도 내 착각이었던 거야, 그보다는 불규칙한 고리들이 겹쳐 있는 모양이지, 그때그때 밀려오
는 공황 정도에 따라, 때로는 왈츠처럼, 짧고 급격한 회전으로 만들어진 고리들, 때로는 이탄지(泥炭地) 전역을 감싸는, 큰 폭의 포물선을 그리는 고리들, 그리고 때로는 그 둘 사이, 어딘
가에 위치해 있으면서,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꾸준하게 축을 따라 이어지는 고리들. 하지만 내가 언급하고 있는 그 시기에 방금 말한 역동적인 삶은 끝이 나기 때문
에, 제3자가 주는 자극 없이는, 나는 움직이지 않아, 또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고. 사실은, 예전에 대단한 여행가로 활동하다가 그 끝 무렵에, 무릎으로 걷다가, 기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
다 보니, 알다시피 그 위에 머리만 달랑 얹혀 있는, 그저 (비참한 상태의) 몸통만 남은 거야, 자 이게 내가 최대한 이해하고 기억했던 내 남은 신체에 관한 묘사야. 도살장 근처 인적 드문 길
가에 놓인, 속 깊은 한 항아리 속에, 꽃다발을 쑥 집어넣듯이, 항아리 주둥이가 내 입에 닿을 정도로, 쑥 들어가 있는 나는, 움직이지 않고 있어, 마침내. --- p.62
전부 다 목소리들의 문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가끔씩 잊어버릴 때가 있어.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게, 말들인 거지 뭐. 그들이 나한테 말을 하다 하다 끝내 언젠가는 지쳐버리
겠지 하는 희망에 기대어, 나는 그들이 나한테 말하라고 말한 걸 말하고는 있어. 그런데 알아들을 귀도 없고, 이해할 만한 머리도 없고, 제대로 기억도 못 해서, 나는 그저 잘못된 말만을 하
고 있는 거야. 지금은 시작하는 목소리는 바로 웜의 목소리라고 내가 하는 말을 내가 듣고서, 들은 그대로, 나는 그 소식을 전하고 있어. --- p.89
소리들이, 그것들이 돌아다니다가, 큰 벽을 통과하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그 모습들을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당연히 그럴 수 없지. 하지만 이번 경우는 비교적 특별하니
까. 그런데 어떤 모습들을 말하는 거야, 실수를 하더라도, 무엇과 관련된 문제인지는 알아보려고 해야 하는 거잖아. 우선은 의기소침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 그 회색이야. 그렇기는 한데
그 회색 안에 노란빛이 좀 있어, 장밋빛도 좀 있는 듯하고, 예쁜 회색이네, 어떤 색하고도 다 잘 어울린다고 일컬어지는 그런 종류의, 지린내 나고 뜨뜻한 회색이지. --- pp.113~114
그런데 죽을 수도, 살 수도, 태어날 수도 없다는 그 이야기는 정말 대단해, 그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어디로 가는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어디에서 오는지도 모른 채, 앞으
로 나아가지도 못 하고,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며, 죽어가고, 살아가고, 태어나는, 어떤 누군가가 자신이 존재하는 곳에 머물러 있다는 그 이야기도 대단하지, 사실 거기에서는 그 어떠한
가정도 해보지 않고, 그 어떠한 자문도 해보지 않은 채, 다른 곳에 있을 수 있고, 다른 식으로 존재할 수도 있으나, 어떤 누군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보니, 그냥 그곳에 있는 거야, 자신이 누
구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아무개는 거기에 머물러 있는 거지, 그 아무개가 보기에, 그의 주변에는, 겉으로 보기에, 겉으로 보기에 말이야, 아무 변화도 없는 거야. 끝을
기다려야만 해, 끝은 오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그렇게 끝이 오면, 끝이 오면 아마도 결국 이전의 상태와 똑같게 될 거야, 끝을 향해 가거나, 그로부터 멀어지거나, 불안에 떨거나, 또는 즐겁
게, 그 끝을 기다려야만 했던 그 오랜 기간의 상태와 똑같게 될 거라고, 정통해 있든, 체념하고 받아들이든, 충분히 해봤든, 충분히 있어봤든,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그 무엇으로도 있을
줄 몰랐던 자에게는, 다 똑같은 거니까. --- pp.128~129
여러 작은 덩어리들,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결합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는, 그 모든 작은 덩어리들이 바로 나야, 내가 어디를 가건 간에 나는 나를 다시 발견하고는, 나를 버리고, 나한
테로 가서는, 나한테서 나오거든, 결국 다 나인 거지, 되찾고서는, 잃어버리는 바람에, 사라져버린, 나라는 작은 한 조각일 뿐인 거야, 단어들, 내가 그 모든 단어들이야, 그 모든 낯선 단어
들, 먼지 같은 그 말들이 다 나야. --- pp.153~154
사뮈엘 베케트 선집.
사뮈엘 베케트의 장편소설.
베케트의 소설 3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중 마지막 소설이다.
세 소설은 그 내용이 직접적으로 이어지지는 않되 동일한 이름들이 언급되고 주체를 규정짓는 이름이 점차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 등에서 3부작으로 통하며,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는 이러한 흐름의 핵심을 담고 있다.
제목대로,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3부작의 첫 소설 <몰로이>에서는
1부의 인물 몰로이와 2부의 인물 모랑은 자아분열로 인해 구별할 수 없는 존재들로 추정되고,
두 번째 소설 <말론 죽다>에서 말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은 죽어가고 있다가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에서,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팔다리도 없다.
몸통과 머리만 남은 채 단지에 들어가 어느 식당의 메뉴판 노릇을 하고 있는 이 '항아리-인간'은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를 넘어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이렇게 3부작은 주체를 규정짓는 이름이 점차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는 그 끝에서 '주체의 거의 완전한 추락'을 보여준다.
지금은 어딜까? 지금은 언제일까? 지금은 누구일까? 나한테 묻지 말고. 나는이라고 말하기. 생각하지 말고. 그것들을(ca) 질문이라고, 가설이라고 부르기. 앞으로 가, 여기서 저것은 앞으
로라고 하고, 이것은 가라고 하기. --- p.9
내 귀가 완전히 먼 건 아닌 게 나한테 전달되는 소리들이 분명히 있거든. 여기가 거의 완벽하게 조용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그게 또 완전히 조용한 건 아니라서. 나는 이곳에서 들은 첫 번
째 소리를 기억하고 있어, 처음 들은 날 이후에도 같은 소리를 자주 듣고는 했지만. 사실 나는 내가 여기 체류하게 된 데에도 어떤 시작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해봐야만 할 거야, 그게 비록
이야기를 편하게 하려는 수작밖에 안 될지라도. 지옥 그 자체는, 영원한 것이기는 하지만, 루시퍼의 반란에서 시작되는 거잖아. 따라서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유사성에 기대어,
영원부터는 아니었을지라도, 영원토록 내가 여기에 있으리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는 거지. 그럼 자 이런 생각이 내 설명에 얼마나 특별한 공헌을 하는지 바로 보자고. 특히 기
억이, 내가 사용하는 걸 금해야만 한다고 내가 생각하고는 했던 그 기억이, 필요한 경우에는, 즉시 발언권을 가지게 될 거야. 여기에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들이 적어도 1천 개 정도는
있어. 이 단어들이 나한테 필요할 때가 아마 있을 거야. 그러니까 완전무결한 침묵의 한 시대가 지나가면, 어떤 비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지. --- p.15
섬, 나는 섬 안에 있어, 나는 절대로 그 섬을 떠난 적이 없었어, 그걸 보면 나도 참 한심해. 나는 나선 모양으로, 세계 일주를 하며 살았다고 그렇게 이해하고 믿고 있었지. 착각한 거야, 내
가 쉬지 않고 돌고 있는 곳은 바로 그 섬이니까. 나는 오로지 그 섬 말고는, 다른 곳은 전혀 몰라. 사실 둘러볼 기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 섬에 대해서도 역시나 아는 게 없어. 나는 섬
기슭에 다다르면, 거기서 방향을 틀지, 섬 안쪽으로. 내 경로는, 나선 모양이 아니야, 그것 역시도 내 착각이었던 거야, 그보다는 불규칙한 고리들이 겹쳐 있는 모양이지, 그때그때 밀려오
는 공황 정도에 따라, 때로는 왈츠처럼, 짧고 급격한 회전으로 만들어진 고리들, 때로는 이탄지(泥炭地) 전역을 감싸는, 큰 폭의 포물선을 그리는 고리들, 그리고 때로는 그 둘 사이, 어딘
가에 위치해 있으면서,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꾸준하게 축을 따라 이어지는 고리들. 하지만 내가 언급하고 있는 그 시기에 방금 말한 역동적인 삶은 끝이 나기 때문
에, 제3자가 주는 자극 없이는, 나는 움직이지 않아, 또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거고. 사실은, 예전에 대단한 여행가로 활동하다가 그 끝 무렵에, 무릎으로 걷다가, 기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
다 보니, 알다시피 그 위에 머리만 달랑 얹혀 있는, 그저 (비참한 상태의) 몸통만 남은 거야, 자 이게 내가 최대한 이해하고 기억했던 내 남은 신체에 관한 묘사야. 도살장 근처 인적 드문 길
가에 놓인, 속 깊은 한 항아리 속에, 꽃다발을 쑥 집어넣듯이, 항아리 주둥이가 내 입에 닿을 정도로, 쑥 들어가 있는 나는, 움직이지 않고 있어, 마침내. --- p.62
전부 다 목소리들의 문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가끔씩 잊어버릴 때가 있어.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게, 말들인 거지 뭐. 그들이 나한테 말을 하다 하다 끝내 언젠가는 지쳐버리
겠지 하는 희망에 기대어, 나는 그들이 나한테 말하라고 말한 걸 말하고는 있어. 그런데 알아들을 귀도 없고, 이해할 만한 머리도 없고, 제대로 기억도 못 해서, 나는 그저 잘못된 말만을 하
고 있는 거야. 지금은 시작하는 목소리는 바로 웜의 목소리라고 내가 하는 말을 내가 듣고서, 들은 그대로, 나는 그 소식을 전하고 있어. --- p.89
소리들이, 그것들이 돌아다니다가, 큰 벽을 통과하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그 모습들을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당연히 그럴 수 없지. 하지만 이번 경우는 비교적 특별하니
까. 그런데 어떤 모습들을 말하는 거야, 실수를 하더라도, 무엇과 관련된 문제인지는 알아보려고 해야 하는 거잖아. 우선은 의기소침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 그 회색이야. 그렇기는 한데
그 회색 안에 노란빛이 좀 있어, 장밋빛도 좀 있는 듯하고, 예쁜 회색이네, 어떤 색하고도 다 잘 어울린다고 일컬어지는 그런 종류의, 지린내 나고 뜨뜻한 회색이지. --- pp.113~114
그런데 죽을 수도, 살 수도, 태어날 수도 없다는 그 이야기는 정말 대단해, 그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어디로 가는지도, 어디에 있는지도, 어디에서 오는지도 모른 채, 앞으
로 나아가지도 못 하고,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며, 죽어가고, 살아가고, 태어나는, 어떤 누군가가 자신이 존재하는 곳에 머물러 있다는 그 이야기도 대단하지, 사실 거기에서는 그 어떠한
가정도 해보지 않고, 그 어떠한 자문도 해보지 않은 채, 다른 곳에 있을 수 있고, 다른 식으로 존재할 수도 있으나, 어떤 누군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보니, 그냥 그곳에 있는 거야, 자신이 누
구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아무개는 거기에 머물러 있는 거지, 그 아무개가 보기에, 그의 주변에는, 겉으로 보기에, 겉으로 보기에 말이야, 아무 변화도 없는 거야. 끝을
기다려야만 해, 끝은 오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그렇게 끝이 오면, 끝이 오면 아마도 결국 이전의 상태와 똑같게 될 거야, 끝을 향해 가거나, 그로부터 멀어지거나, 불안에 떨거나, 또는 즐겁
게, 그 끝을 기다려야만 했던 그 오랜 기간의 상태와 똑같게 될 거라고, 정통해 있든, 체념하고 받아들이든, 충분히 해봤든, 충분히 있어봤든,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그 무엇으로도 있을
줄 몰랐던 자에게는, 다 똑같은 거니까. --- pp.128~129
여러 작은 덩어리들,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결합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는, 그 모든 작은 덩어리들이 바로 나야, 내가 어디를 가건 간에 나는 나를 다시 발견하고는, 나를 버리고, 나한
테로 가서는, 나한테서 나오거든, 결국 다 나인 거지, 되찾고서는, 잃어버리는 바람에, 사라져버린, 나라는 작은 한 조각일 뿐인 거야, 단어들, 내가 그 모든 단어들이야, 그 모든 낯선 단어
들, 먼지 같은 그 말들이 다 나야. --- pp.153~154